민음사에서 나오는 문학 소설을 차근차근 읽어보고 있다. 물론 그 많은 책(360여 권정도)을 다 볼 엄두는 못 내고 있지만, 유명한 책들은 꼭 읽어보려고 하고 있다. 이 책도 그런 책들 중의 하나였다. 올해 들어 [위대한 개츠비]를 읽은 다음 바로 이 책을 골랐다. 사실 개인적으로 [위대한 개츠비]에서 크게 감명을 받지 못해서, 이 책도 별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렇게 끝까지 나의 흥미를 끌면서,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본 책은 작년 [싯다르타] 이후 오랜만인것 같다. 정말 흡입력이 좋은 문장들과 내용이었다. 개인적인 취향에 맞아서 그럴 수도 있으나, 이 정도의 흡입력이 있다는 것은 작가의 문작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일까. 강한 페이소스를 느낄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든다. 진짜 좋은 책은 아무리 피곤하고 읽기 힘든 환경에서도, 독자들을 집중시키고 점점 끌어들이는 강한 매력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이 나에겐 그랬다.
작년부터 자기계발서, 인문학, 예술서적들을 읽고는 있지만, 역시나 나는 문학 소설 쪽이 성향에 잘 맞는 것 같다. 과거 중학교 때부터 민음사 책들을 조금씩 용돈을 모아 사서 읽었고, 20대에서 30대에도 소설책을 꽤 읽었었다. 그렇다 보니 소설이 익숙하고 더 강하게 마음속에 진동이 울리는 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이렇게 흥미롭고 매력적인 책을 만나서 너무 기쁘다.
내용도 전혀 어렵지 않아서, 10대 청소년들이 보기에도 참 좋을것 같다. 물론 지금 내 나이에도 깊은 감명을 받은 것을 보면 연령층을 가리지 않는 책이다. 스토리도 따지고 보면 아주 단순하다. 주인공이 성적 부족으로 고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나서, 집에는 알리지 않고 며칠간 뉴욕에서 방황하는 동안의 해프닝과 그의 심리적인 표현이 주된 것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16살 남학생 홀든 콜필드의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되고 있다. 주인공은 아주 감수성이 예민하고, 유머러스하며, 재치있고, 또 반항적이다. 그리고 반항적인 생각을 감추고는, 빈정대면서 가식적으로 어른들을 상대할 만큼 노련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심리상태를 독백처럼 계속 들여다 보는 독자들은 점점 그의 감정에 동화가 된다. 그리고 사춘기 시절 반항적이고 불만이었던 자신의 모습도 기억 내해며, 내가 그가 되어가는 기분을 느낀다. 나 역시도 그 시절부조리하고 성숙해보지 않았던 어른들과 사회를 냉소적으로 많이 바라봤었던 것 같다.
그렇게 주인공의 거침없는 솔직한 속내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속시원하고 유쾌하기까지 했다. 읽어보면 동감을 할 것이다. 중간중간 킥킥거리며 웃음이 나는 장면들이 많았고,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상황들에 몰입해서 끝까지 지루하지 않게 읽어 내려갔다. 우리의 불안하고 외로웠던 사춘기 시절의 감정을 다시 느낄수 있다는 건 행운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가볍게 읽어가면서, 주인공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는 말을 할 때는 뭔가 진한 진동이 가슴 밑으로부터 울려 퍼져 나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심리적으로 고독하고 불안했었던 그의 마음을 이해하는 순간들이었다. 감동들이 밀려왔다.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독자들이 방심한 순간 저자는 치밀한 계획으로 수면 밑에 감춰놓았던 깊은 주제를 드러낸 것이었다.
스포 주의!
책을 읽기 전에도 계속 그런 의문은 들었다. 왜 호밀밭의 파수꾼인가? 농촌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인가 그런 상상도 했었다. 하지만 전혀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 스포가 될 수 있으므로, 결말을 알고 싶은 사람만 보길 바란다.
여동생 피비와 주인공의 대화중에, 주인공은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 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그전에 주인공에는 과거의 아픔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어린 남동생 앨리의 죽음이었고, 하나는 또 같은 동급생 제임의 캐슬이라는 아이의 자살이었다. 어렸던 두 사람의 죽음이 주인공에게 얼마나 큰 상처와 좌절이 되었을까. 부조리하고 가식적인 어른들의 모습에 좌절을 느끼고, 스스로를 지켜나가기 위해서 그렇게 방황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은 자신과 같이 상처 받지 않도록 지켜주고 싶었을 것이다.
주인공은 뉴욕을 방황하면서,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고, 거절을 당하면서도 낯선 사람들에게 말을 붙여보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그가 얼마나 고독하고 외로운 상황인지, 또 그 누구도 그의 영혼을 진심으로 위로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동생 피비와의 만남과 애정 어린 대화 속에서 그는 다시 일어설 의지를 갖게 된다. 포기와 절망 속에서 끌어주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또 이 책은 말해주고 있다.
내가 위대한 개츠비를 보고 감명을 받지 못했듯이, 누군가는 이 책을 보고 실망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각각 개인의 성향과 취향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섬세한 심리 표현 속에 감동을 선사해준 이 책을 읽은 경험을 값지게 생각하며, 누구에게든 추천을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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